아이를 키우다 보니 어느새 32개월이 되었다.
제법 대화도 되고 신발과 바지 정도는 벗을 수도 있게 되었다.
더 이상 아기가 아닌 어린이가 된 아이를 바라보면서
스멀스멀 둘째 생각이 났고,
남편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고 했다.
우리는 아이 나이 차이가 더 벌어지기 전에 둘째를 계획하려고 했다.
친정엄마는 맞벌이인 부부를 대신해 어린이집 등하원을 해주시고,
같이 살고 있는 친정 부모님께 말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내 예상과는 달리 친정엄마는 얼굴빛이 좋지 않았다.
그리고 좀 더 생각해 보는 게 어떻겠냐고 하셨다.
평소에 내가 하려는 일에 응원해주시고 따라주셨던 엄마의 미적지근한 반응에 놀랐다.
하루 이틀쯤 지나 다시 한번 운을 띄워 보았다.
친정엄마는 지금의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시면서 무리라고 하셨다.
조금 서운한 마음이 들었고 엄마의 말에 대답하지 못했다.
저녁이 되어 아이와 씻고 나와 저녁 준비를 하려는데
엄마의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
나는 놀라서 엄마에게 왜 그러시는지 물어보았다.
엄마의 대답에 나는 또 대답하지 못했다.
"나 힘들어, 이제 나는 나이 들었어."
60대 정년퇴직하고 난 엄마가
10개월 아이와 사투를 벌이는 나에게 말하셨다.
"엄마가 아이 봐줄 테니 일하러 나가라.
여자도 일해야 해. 너는 빛나야 해."
평생을 일하셨던 엄마가 나에게 해준 말이었다.
나는 20대 동안 일을 하였고, 30대 퇴사 후 이직 준비 중에 생긴 아이.
그리고 1년의 시간이 흐르고 나니
모아두었던 비상금도 동나고 남편의 월급에만 의존하게 되었다.
그런 나를 보며 엄마가 해준 말은 동태눈 같던 나에게 빛을 찾아주었다.
면접을 보고 들어간 회사는 작지만 안정적이고 즐거웠다.
엄마에게 매달 많은 돈을 드리진 못했지만 그래도 경제적으로 힘이 생겨서 좋았다.
그리고 3년이 된 근무 기간 동안
출퇴근, 업무의 강도도 공무원 같고 편해서 좋았고
아이도 예쁘게 잘 크는 모습에 둘째를 생각했다.
남편과 나는 둘째 계획을 그만두고
하나를 잘 키우자고 하였다.
친정엄마가 힘드신데 그것보다는 내가 나만 생각했구나 하고
나 자신에게 소스라치게 놀라기도 했다.
그리고 어제 언어치료를 갔더니 상담사 선생님께서 다음 주까지만 나오시고 다른 곳에 가신다고 하신다.
맞다.
지금의 상황이 항상 같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었다.
언제든지 지금과 똑같을 수는 없겠구나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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